<한 편의 시> 사월의 안부
<한 편의 시> 사월의 안부
  • 남길우
  • 승인 2014.04.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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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사월의 안부

별빛마저 붉게 물드는 바닷속

이곳 안부가 궁금하시겠죠.

떨어지는 꽃잎마저 쌓이지 않는 물결에

해조음만 잔뜩 울어대고

성난 물소리를 헛짚은 갈매기의 자맥질마저

거센 물살에 휩쓸리며 파닥거립니다.

급류에 조각난 내 어린 꿈 하나 쪼우지 못하고

해류에 휩쓸린 내 손길마저 붙들 수가 없나봐요.

늘 젖어있을 사월의 기억을 전하기 위해

선상을 맴돌던 갈매기를 기다려 보지만

조금씩 지워져가는 생명의 끄나플,

여린 몸에 어린 목숨줄이 각인되기도 전에

바다는 낙인을 팍팍 찍고 까닭 없이 해저로 저를 데려갑니다.

엄마! 엄마! 소리쳐 불러보는 쉰 목소리도

눈 앞 지척에 두고 바람결로 흩어지고

허연 잇빨만 드러내는 파도 너머로 젖은 눈길은 닿지 못합니다.

물살을 첨벙이는 손짓 발짓도 옛 사진첩에 가득 남겨두고

풍랑은 두 세계를 냉정히 가르는군요.

땅에서 물에서 멀리 나눠 살더라도 생명을 부린 어디든 격랑속이라고

언젠간 털털 털고 만날 날을 기대하며

사월의 안부를 이제 접으렵니다.

출렁출렁 파도를 타는 환호성도

낭만의 봄꽃을 피우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는

차츰 소금기에 절여가는 몸부림도 굳어가고

바다 속의 숨가쁜 소식을 애써 침묵할 뿐입니다

엄마 울지마세요 잘 알잖아요 서툰 안부가 파도 탓이라는 것.

울먹이는 어깨너머로 해는 기울고, 새들은 둥지로 가서 깃들고

엄마 그래도 남겨진 생애에 억센 파도를 퍼 담지마세요

흔들리는 땅이 여기까지 진동합니다.

날선 바다가 고스란히 가져가버린 사월의 통곡을

고이 넣어서 삭이고 삭혀서

내 영혼이 닿는 곳까지 춤추며 노래하며 가렵니다.

엄마 더 이상 바닷가에 집을 짓지 마세요.

바닷가에서 한번 운 사람은 평생 눈길이 젖어 산다는데

저는 그 뜨겁고 짜디짠 눈물에 절어 또 떠다녀야만 합니다.

이제는 알 수 없는 머나먼 섬으로 둥둥 떠다니며

그리움이란 꽃말이 어울리는 이름 모를 꽃을 마저 피위 보렵니다.

이곳에선 이념도 사상도 공허한 울림

안부 대신 그곳 유행가 한 자락 불러주세요

그 세월 속에 다친 마음… 세월이 약이겠지요∼

정노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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