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캐디들에게서 원활하고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할 때는 속이 상한다.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캐디들도 많지만 직업 정신이 없는 캐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캐디피와 봉투
“봉투가 예쁘네요. 근데 전 봉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안에 얼마나 들었냐가 더 중요해요“
라운드가 끝나고 핑크색 봉투에 캐디피를 넣어 건네자 캐디가 한 말이다. 말 그대로 캐디피를 봉투에 담아주는 성의보다 안에 얼마의 돈이 들어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오래전부터 라운드 후 캐디피를 봉투에 넣어 주곤 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캐디를 처음 만나다 보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미리 준비한 예쁜 봉투의 캐디피를 건넬 때마다 거의 모두가 웃는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곤 했었다. 일부 골퍼들이 라운드가 끝나면 각자의 주머니에서 걷어 모으거나, 꼬깃꼬깃한 내기 돈 중 일부를 건네는 것이 보기 싫고 받는 사람 기분도 좋지 않을 것 같아 봉투를 준비해 다니던 중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캐디를 부르는 대명사
오래전, 골퍼들은 캐디를 ‘언니’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골퍼에 비해 나이가 적은 그들에게 마땅한 호칭이 없어 언니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여성 골퍼들은 흔치 않은 남자 캐디들에게 ‘언니’ 대신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해, 골프장에서 ‘언니, 오빠’는 캐디들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 시기에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비교적 고소득이어서 인기가 있었지만, 골프장이 많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였는지 모른다.
캐디로 취업을 하려면 전문 학원에서 일정 기간 이론 교육을 받고 또다시 골프장에서 수습 캐디로서 현장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교육 기간 현관에서 골퍼들의 백을 받는 일부터 코스 디봇 메우는 작업은 물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선임 캐디를 따라 라운드 실습교육을 받고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정해진 캐디피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캐디는 골퍼들의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서비스를 한다는 개념이 강했다. 그렇기에 많은 골프장이 주기적으로 서비스 교육을 시켰고 대부분의 교육 주제 또한 고객 만족이나 고객 서비스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골프장 교육 시간에 많은 특강을 했던 필자의 강연 내용 또한 그랬었다.
늘어난 캐디 수요에 따른 변화
최근 몇 년 동안 골프장과 골퍼들이 급작스레 늘어나고 야간 라운드까지 생기면서 캐디 수요도 엄청 많아졌다. 근무환경이 좋고 도심 근처에 있는 골프장들은 그나마 캐디 수급에 큰 문제가 없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골프장들은 캐디를 못 구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캐디들까지 라운드에 투입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코스 공략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서비스가 되지 않아 가끔 플레이어들과 시비가 오가는 일이 있기도 했다. 연속되는 라운드로 피로에 지친 캐디들은 골퍼들에게 환한 미소 대신 인상을 찡그리는 일이 많아졌고, 클럽을 가져다주거나 퍼팅 라인을 읽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카트 옆에서 꼼짝 않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했다.
간혹 이런 캐디들과 마찰을 빚은 골퍼가 골프장에 불만을 제기하면 오히려 회사 측에서 이해를 구하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뜩이나 캐디가 부족하고 충원을 할 수 없어 난리인데, 해당 캐디를 불러 뭐라 하면 그다음 날 바로 안 나오고 다른 골프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골프장도 캐디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엔 캐디를 부르는 호칭도 ‘캐디님’으로 바뀌었다. 캐디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젊은 초보 골퍼들이 늘어나며 캐디 눈치를 살피는 라운드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캐디들에게 심한 성적 농담이나 추행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던 과거에 비하면 좋은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일부 캐디들에게서 원활하고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할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한다. 적당히
앞 팀과의 간격이나 잘 유지해 골프장 측으로부터 진행으로 인한 욕이나 먹지 않게 일한다는 느낌이 들 때는 더 그렇다. 물론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캐디들도 많지만 직업 정신이 없는 캐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골퍼들의 멋진 샷에 환호하며 박수 치고, 미스샷에 안타까워하며 격려하는 캐디야말로 정말 골퍼들이 가장 바라고 원하는 캐디다.
버디팁의 아이러니
요즘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버디팁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초보 골퍼가 캐디의 노련한 퍼팅 라인 도움으로 생전 처음 버디를 해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시작한 버디팁이 이젠 보편화 된 것 같다. 골퍼들이 잘 치고 좋은 점수를 내도록 하는 것은 캐디 본연의 임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 당연한 일을 했다고 별도의 팁을 주거나 받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이런 문화를 만든 골퍼들의 책임이 더 크지만 버디팁을 주지 않으면 팀 분위기가 어색하고, 때론 캐디의 눈치가 싸늘해져 어쩔 수 없이 주어야만 한다는 골퍼들의 볼멘소리도 많다. 정말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18홀 라운드 동안 동반자들이 즐겁고 편하게 라운드할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일했다는 것에 공감해 라운드 후 감사한 마음으로 팁을 준다면 그래도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캐디피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한 라운드에 대략 15만원, 하루 2라운드 일할 경우 30만원이니 고소득이다. 몇 해 전까지는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알토란같은 순수입이었다. 그럼에도 그 높은 소득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골퍼들에게 소홀히 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불친절하거나 플레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캐디들에게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깝다며 노캐디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골퍼들이 10명 중 6~7명이나 된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노캐디나 캐디 선택제 도입에 대한 요구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캐디들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캐디피 또한 인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골프 선진국들에서 오래전부터 캐디 없이 플레이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캐디들은 천금 같은 돈을 주는 골퍼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친절해야 한다. 캐디를 동반해 라운드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다는 느낌을 받을 때 노캐디에 대한 요구도 잦아들 것이다. 골퍼들도 골프의 부대비용이 비싸다고 불만하지 말고 쓸데없는 팁을 남발하는 문화부터 없애면 어떨까 생각한다.
오늘도 라운드를 나서는 길에 예쁜 핑크색 봉투를 골프 파우치에 챙겨 넣으며 지난번 라운드의 캐디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려본다. “봉투 안에 든 현금도 중요하지만, 이 봉투에 담아 건네는 골퍼의 마음을 더 감사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GJ 글 박한호 이미지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