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 보호 의무 판결, 권리 증진 전환점 되나?
캐디 보호 의무 판결, 권리 증진 전환점 되나?
  • 김상현
  • 승인 2024.02.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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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캐디는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러한 가운데 캐디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용인의 책임까지 더욱 폭넓게 물은 판례가 나온 건 확실히 주목할 만 한 일이다.

 

특수고용직 캐디

 

‘캐디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한다.’ 상식인이라면 이 명제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캐디 역시 한 명의 인격체이자 전문 직업인으로서 인권과 직업인으로서 권리를 보호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안타깝게도 이 당연한 명제가 현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개인의 일탈’이 있다. 몇몇 진상 고객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혹은 직장 상사나 동료가 특정 캐디를 괴롭히는 등의 경우다. 이럴 땐 먼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비판받고, 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캐디의 권리 보호를 그저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캐디라는 직종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캐디는 ‘특고(특수고용직)’ 신분이다. 특수고용자는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계약 형식은 사업주와 개인 간의 도급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캐디는 화물차 운전기사, 통신업체 현장 설치기사 등과 특고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특고는 일반 근로자보다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하다. 정식 노동자가 아니기에 산재보험이나 퇴직금 등에 있어서도 불리하다. 여기에 직장 내 괴롭힘 문제 등에 대응하기도 훨씬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으며, 어기면 처벌 대상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항목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 당사자나 목격자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 권리, 직장 내 사용자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의무 등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은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법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물론 특수고용직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는 캐디를 향한 고객의 갑질 혹은 직장 내 괴롭힘이 이어지는 주원인으로 꼽혔다.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이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또 문제가 생긴 후 관련자의 처벌 및 관리자의 책임을 묻는 데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캐디 관련 주목할만한 판례

 

이런 가운데, 최근 주목할 만한 판례가 나왔다. 바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캐디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면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례다.

이 사건은 A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B 씨, 그리고 캐디를 통솔하는 캡틴 C 씨 등이 얽힌 사건이다. B 씨는 C 씨에게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해왔다. B 씨는 C 씨에게 무전을 통해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듣기도 했고, 근무수칙이나 출근표 등을 확인하는 데 쓰는 온라인 카페에서 탈퇴를 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결국, B 씨는 사표를 제출하였고,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이에 B 씨 유족은 가해자인 C 씨는 물론, A 골프장 측에도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작년 2월에 판결이 난 1심에서, 재판부는 B 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먼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꼭 노동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였고, 가해자 C 씨 개인은 물론 A 골프장의 책임도 인정했다. 즉 A 골프장 측에서 가해자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여, A 골프장과 C 씨가 함께 B 씨에게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2심 판결은 작년 12월에 선고되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 배상에 대한 사항은 1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즉 A 골프장과 C 씨가 B 씨에게 일정액의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점은 그대로 인정했고, 배상금을 늘리거나 줄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법리적인 판단에서는 변화가 있었다. 1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A 골프장이 사용인으로서 책임이 있었다는 점을 좀 더 명쾌히 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무를 제공 받는 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했고, 본 사건에서 골프장 측이 상사의 괴롭힘 등을 알고도 캐디가 숨질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이 가지는 의의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산업안전법에서 특수고용직도 보호 대상으로 삼은 이래,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인 첫 번째 판례로 여겨진다. 즉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사용자는 특수고용직의 근로 제공을 받을 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 일반 근로자는 물론 특수고용직 또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막는 책임이 사용인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는 대법원 판례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캐디에게 도움이 되고, 건전한 골프장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캐디는 골퍼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캐디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캐디도 적지 않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관련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었다. 곧 어떤 악습을 바로잡으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제도의 도움이 필요한데, 캐디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이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 가운데 캐디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용인의 책임까지 더욱 폭넓게 물은 판례가 나온 건 확실히 주목할 만 한 일이다. 물론 판례로 못을 박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디 등 특수고용직의 법적 권리가 보다 잘 보호되도록,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캐디가 진정 골퍼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서, 법적으로 권리를 보호받을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GJ 김상현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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