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해저드 사고는 안 되고, 정자교 붕괴사고는 된다? ‘중대시민재해’가 뭐길래
골프장 해저드 사고는 안 되고, 정자교 붕괴사고는 된다? ‘중대시민재해’가 뭐길래
  • 전은미
  • 승인 2023.04.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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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보행교인 ‘정자교’가 붕괴되면서 이를 지나가던 시민 2명이 사상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이듬해인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국민들은 겉잡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편 이번 정자교 붕괴사고가 ‘중대시민재해’ 적용 첫 사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 역시 집중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4월 전남 순천시 소재의 모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50대 여성이 해저드에 빠져 사망한 사고 당시에도 적용이 검토된 바 있으나, 최종적으로 불가 판정이 있었던 해당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대시민재해’란 도대체 무엇인지, 정자교 붕괴 사고와 지난해 순천의 모 골프장 해저드 사망사고와 비교해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자.

 

순천 골프장 해저드 사고는 왜 ‘중대시민재해’에 해당되지 못했나

 

지난해 4월 전남 순천시 소재의 모 골프장에서 공을 주우려던 50대 여성이 해저드에 빠진 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사고는 ‘중대시민재해’ 첫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는데, 이에 해당될 경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사업주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해당 사건을 ‘중대시민재해’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핵심 포인트는 ‘골프장을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있는가’였다. 골프장이 공중이용시설로 판단될 경우, 사업주 또는 담당 실무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까지 적용할 수 있었다.

이에 전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대는 해당 골프장의 안전관리 책임자는 물론 캐디 역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두 사람은 해당 사고의 안전관리 책임자인만큼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이다.

익사 사고가 발생한 해저드의 최대 수심은 3m로 중심으로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저류형 구조였다. 또한 모든 골프장의 해저드와 마찬가지로 바닥에는 방수포가 깔려 있어서 익수자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이에 경찰 측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한 유사 사고들을 조사해본 뒤, 유권해석을 통해 지하철 역사나 병원 같은 중대시민재해 시설에 골프장을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해당 사건은 사고 발생 이후 6개월만인 10월에 이르러서야 판단이 났는데, 체육시설관리법상 골프장 해저드에 대한 안전시설 규정이 미비한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판단에 대해 법률 전문가인 모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기본 조건인 공중이용시설으로 구분되기 위해서는 건축법상 건출물이면서 전체 면적이 5천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하는데, 골프장 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는 건축물에 해당될 수 있지만 필드 자체를 건축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사고 발생 이후 골프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일부 골프장들은 라운드 전 안전사고 인지개선 확인서 등을 만들어 카트사고나 익사사고에 대해 사전 고지하고 이를 확인했다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 소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처”라고 평가했다.

 

정자교 붕괴사고가 ‘중대시민재해’ 첫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정자교 붕괴사고가 중대시민재해 적용 첫 사례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고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요구되는 ‘부상자’가 10명 이상인 경우, 또는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인 경우여야 한다.

또한 사고 발생 장소인 정자교가 공중이용시설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연장 100m 이상에 해당해야 한다.

지난 순천 골프장 해저드 익사 사고 당시에는 골프장을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판단이 지연된 끝에 결국 중대시민재해가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정자교 붕괴 사고는 1명의 사망자와 1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고, 교량의 총 길이 역시 108m에 달하는 만큼 중대시민재해 적용을 위한 기본 요건에 모두 부합한다.

해당 법의 적용 대상은 사업주나 대표이사 등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인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장 역시 포함된다.

다만 이번 정자교 붕괴 사고가 순천 골프장 해저드 익사 사고와 달리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려면 사고 발생 원인이 ‘지차제의 관리 소홀’ 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명확하게 입증돼야 한다.

현재 경찰은 정자교 붕괴 사고가 발생한 분당 지역의 관할 지자체인 분당구청 교량 관리 업무 담당자 등을 소환하여 사고 원인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이번 수사를 통해 관리사항의 하자 혹은 부실 관리가 입증될 경우, 중대재해법 위반 사고 첫 사례로 적용될 수 있다.

한편 대한토목학회는 지난 11일 ‘정자교 붕괴 사고’에 대한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1993년 개통된 정자교와 같은 시기에 시공된 교량에 대해 즉각적인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분당·일산·중동·산본·평촌 등에 조성한 1기 신도시의 인프라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급조된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도시를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순천 골프장 해저드 사고 당시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중대시민재해’가 이번 정자교 붕괴사고에서는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사건의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다.

 

 

GJ 전은미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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