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별 골프 트렌드의 변천 : 1990년
연대별 골프 트렌드의 변천 : 1990년
  • 강태성
  • 승인 2022.11.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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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1호를 시작으로 2022년 11월 <골프저널 400호>가 발간되기까지 우리나라 골프는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1989년부터 2022년까지 주요 골프 트렌드 다시 보기.

 

 

1990년이 되기 전까지는 전국에 골프장이 50개가 넘지 않았다.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아무나 건설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막강한 청와대의 뒷배나 허가가 있어야 골프장 건설이 가능했으며,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골프장 인허가의 결정권이 지자체로 넘어갔다. 

물론 그때도 많은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기 때문에 각종 비리와 특혜 의혹도 일어났으며 회원 모집이나 농약 사용 등에 대한 시비도 많았었다. 그럼 1990년대 골프장의 모습을 추억해볼까. 

 

108개에 불과했던 1990년대 말 골프장

 

올해도 힐마루 포천, 베이스타즈, 감곡, 이지스카이, 성문안, 울진 마린 등의 골프장이 이미 오픈했거나 개장을 준비 중이며, 이곳들을 포함하면 골프장 수가 580개에 달할 정도니 국토 면적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골프장 수는 많은 편에 속한다. 더구나 파크골프장이나 파3홀 골프장까지 계산에 넣으면 800개가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기준으로 전국의 회원제 골프장은 108개에 불과했다. 1990년대 오픈하는 신규 골프장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92년 10개였다. 이전까지 지지부진했던 골프장 개장이 급증한 이유는 세금 때문이기도 했다. 골프장을 개장하면 취득세를 납부해야 했는데 5% 이상 낮아졌으니 사업자들의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1998년 박세리의 US 오픈 우승, 최경주의 PGA 진출 등으로 골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많은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꾸준한 그린피와 캐디피 인상

 

1990년대에도, 코로나가 닥친 2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린피와 캐디피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1900년대 당시에도 골프장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인상했는데 일부 골프장에서는 방문객에게 그 인상분을 부담시켜 논란이 됐다. 수도권 골프장의 경우 그린피가 11만원 정도였으며 주말에도 12만원 수준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하면 두 배 가량 차이가 난다. 캐디피의 경우에는 3~6만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13~15만원 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이 오른 셈이다. 그러나 캐디는 근로자이며 그린피와 달리 캐디피는 소속된 캐디가 경기 보조 역할을 수행한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 상승률을 반영한다면 무리한 범위에서 인상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1990년대에도 해마다 이슈가 발생했기 때문에 어느 해에는 인상했고 어느 해에는 인하 경쟁을 하기도 했다. 1998년에 제주 골프장의 경우 내장객이 급감하자 9홀 캐디피를 2만원에서 1만 5천원으로 내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가능했던 원 백, 투 백의 경우에도 15~20%의 캐디피 인하를 적용했었다.

 

여유와 낭만을 즐겼던 그 시절 그늘집

 

골프는 일반적으로 18홀을 다 돌아야 한 라운드가 끝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티오프 간격이 지금보다 길고 보다 여유롭게 경기가 치러졌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골프장들이 수입을 올리기 위해 1번홀과 10번홀에서 동시 출발하는 인 아웃 시스템을 도입해 그늘집에서의 여유있는 한 잔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GJ 강태성 이미지 GJ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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