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골퍼가 LPGA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성전환 골퍼가 LPGA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 김태연
  • 승인 2024.03.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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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는 물론, 프로 무대에서도 성전환 선수가 활약한 역사는 꽤 깊다. 하지만 여전히 성전환한 선수가 태생적으로 유리한 신체조건을 무기 삼아 여성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전환 선수와 스포츠

 

2019년, 수위 높은 풍자로 유명한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는 ‘Board Girls’라는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이 에피소드는 ‘성전환(트렌스젠더) 선수 문제’를 주제로 한다. 즉 본래 남성이었지만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던 선수들을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이 때문에 갈등이 불거진다는 스토리다. 

이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만 해도 성전환 선수 문제는 대중들에게 크게 회자되는 논란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종목을 막론하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가 여성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 많아지며 논란도 커졌고, 이 에피소드는 본의든 아니든 미래를 예언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성전환자 최초로 LET 대회에 출전한 미아네 바게르

 

물론 성전환자에게도 스포츠를 즐길 권리는 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 무대에서도 성전환 선수가 활약한 역사는 꽤 깊다. 

2004년, 당시 37세였던 미아네 바게르(덴마크)는 성전환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에 출전하며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바게르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1995년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프로골퍼로 데뷔했으며, 성전환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공식 여자대회(호주여자오픈)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LET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9위를 기록하며 36명에게 주어지는 시즌 풀시드를 따내며 유럽 무대를 밟기도 했다.

 

성전환자 출전 문제로 홍역을 치른 라나 로레스

 

2010년에는 LPGA가 성전환자 출전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당시 57세인 라나 로레스가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세계 드라이버샷 장타 대회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LPGA 측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전직 경찰 출신인 로레스는 2005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 골퍼가 되었다. 수술 3년 뒤인 2008년 ‘롱드라이버스 오브 아메리카’에 출전하여 254야드의 장타를 기록하며 우승한 경력도 있었다. 이후 로레스는 2010년 드라이버샷 장타 대회 여자부에 출전하려 했지만, 대회 주최 측이 ‘태어날 때 여자가 아니었던 사람만 여자부에 출전할 수 있다’는 LPGA 규정을 이유로 출전을 막았다. 

이에 로레스는 LPGA투어의 정책이 캘리포니아주 공민권에 어긋난다며 LPGA와 주최 측을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LPGA는 선수 투표를 거친 후, 문제의 규정을 선수 투표를 통해 폐지하였다. ‘선수 투표’를 통해 당시 규정을 폐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당시 LPGA 선수들은 투표 결과를 대체로 환영했다.

 

LPGA 미니 투어에서 우승한 헤일리 데이비스

 

이후로도 성전환 선수가 종종 여성 대회에 출전하며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헤일리 데이비슨이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 2부의 윌밍턴 대학 남자골프팀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디비전 3부인 버지니아주에 있는 크리스토퍼 뉴포트 대학 남자골프팀으로 편입해 선수 생활을 했다. 2015년 US오픈 남자 대회 지역 예선에 나간 경험도 있다.

이후 데이비슨은 2015년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고, 2021년 1월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데이비슨은 그해 미국 미니투어인 내셔널 여자골프협회(NWGA)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22년엔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는 컷 탈락했지만, 올해 열린 미니투어 NXXT 위민스 클래식에서는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후 활약에 따라 LPGA에 출전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간 승리’ 같지만, 미니투어 우승 후 데이비슨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성전환자로서, 비록 성 정체성은 여성이지만 남자의 체격과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자대회에서 우승한 건 불공정한 우승이라는 비판이었다. 

이에 데이비슨은 수년 전에는 자신이 불공정한 이점을 누렸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제 호르몬 치료를 받은 지 9년이 되었고, 3년 전에 수술을 받았으며, 남자였을 때 300야드를 치던 드라이버샷이 이제는 250야드에 불과하다며 지금의 우승은 정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미국여자골프 미니투어는 앞으로 모든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성별 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끊이지 않는 성전환 스포츠 선수 논란

 

이는 골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타 종목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진 일이 많다. 2020 도쿄하계올림픽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역도 선수 로럴 허버드(뉴질랜드)는 사상 최초의 성전환 올림피언이었고, 동시에 논란의 대상이었다. 

허버드는 남자로 태어나 ‘개빈’이라는 이름으로 105㎏급 남자 역도 선수로 활약한 경험이 있었고, 2013년에 성전환 수술을 했다. 이후 201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성전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대한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 혈중농도 기준을 정했고 허버드는 이 기준을 충족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허버드가 남성으로 태어난 만큼, 여성으로 태어난 선수보다 태생적으로 유리하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가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만일 메달을 땄다면 논란은 더 커졌을 것이다.

이처럼 성전환자의 대회 출전이 논란이 되는 건 ‘공정성’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나 오랫동안 테스토스테론 등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신체는 이후 성전환을 해도 여성으로 태어난 경우보다 신체 능력이 우월하고 

이 때문에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성전환 선수의 대회 출전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세웠음에도,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성전환 수술 여부로 출전 자격을 결정하는 방법. 호르몬 대체 요법 기한을 따지는 방법. 성전환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등을 기준으로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이 시도되었지만, 아직 성전환자와 여성 선수 모두가 납득할 공정한 규정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가 태생적으로 유리한 신체조건을 무기 삼아 여성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골프계에도 불똥이 튄 모양새다.

다양성 존중. 그리고 공정. 둘 다 현대 사회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꼭 지켜야 할 가치이며, 골프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논란이 생기고 커지는 건 지금은 불가피해 보인다. 과연 골프계는 이 논란에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GJ 김태연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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