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특집 2> 박세리, 나는 행복한 선수다
<박세리 특집 2> 박세리, 나는 행복한 선수다
  • 남길우
  • 승인 2016.11.0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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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Seri

나는 행복한 선수다

박세리만큼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골프선수가 있을까? 박세리는 은퇴를 전후해 진행된 공식 인터뷰를 통해 “최고의 골퍼, 최고의 선수도 좋지만 앞으로는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은퇴 후에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선수들에게 필요한 제반 여건들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힌 후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과 성원 속에서 은퇴하게 될 줄 몰랐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IMF라는 힘든 시기에 그녀가 국민들에게 전달한 용기와 도전정신은 아직도 온 국민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골프선수로서의 그녀를 그리워하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정리 김혜경 사진 및 자료 하나금융그룹

 

박세리 선수에게 많은 후배들이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을 해줬는가? 나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후배들이 LPGA에 와서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후배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경험을 토대로 그대로 알려줬다. 처음에는 많이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연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게 됐다.

선수들이 자신에게 너무 인색한 점이 있다. 골프를 즐기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연습을 덜 하라는 것은 아니고, 골프가 끝나면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재충전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IMF로 어려울 때 희망의 상징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스스로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최고의 골퍼, 최고의 선수도 좋지만 앞으로는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 전 타계한 아놀드 파머처럼 골프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족하지만 배우면서 골프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

존경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은퇴 후에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선수들에게 필요한 제반 여건들을 발전시키고 싶다. 선수의 관점에서 개선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 기여하고 싶다. 하루아침에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 선수들이 대회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선수들에게 좋은 훈련 환경,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골프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이 운동만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돌아보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계에 돌풍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다. 연장전에서 해저드에 공이 빠졌던 상황에서 그때와 다르게 플레이했다면 어떤 결과가 됐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때는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고, 즐기자고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나라에서 온 신인이었고 그 주에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US여자오픈 우승이 꿈이었는데 연장전을 위해 18번 홀에 갔을 때 절반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그 때 해저드에서 다르게 플레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4라운드를 마치고 공동 선두였을 때 그때까지 좋은 경기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공이 해저드에 빠졌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에게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해보고 아니면 다음에는 그렇게 플레이 안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박세리는 없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LPGA투어의 ‘영어시험’ 관련한 이슈에 대해 이제 말해줄 수 있는가? 워낙 오래전일이다. 지금은 LPGA투어에 세계 각 국의 선수들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 글로벌하지 않았다. 미국, 유럽 선수가 대부분이고 아시아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LPGA투어도 지금처럼 성장한 단계가 아니었다.

내가 LPGA투어에 가면서 한국 선수들이 많이 늘어났고, 일본 등 다른 아시아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나온 이야기였다. 당시에 투어측의 방법이 옳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선수들의 반대도 많았고, 미국 선수들도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지 그 정책 자체를 옳다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내 투어측에서 번복하면서 오히려 선수들 사이에는 이해도 높아지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LPGA투어가 발전하면서 겪은 과정인 듯하다. 한국 선수들도 빨리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올해 US여자오픈 때 미국에서 열린 경기로는 선수로써 마지막 대회를 치렀다. 그때 눈물을 많이 보였는데 어떤 심정이었는가? 카리 웹 선수가 마지막까지 나와 있었는데 어떤 이야기 나눴는지 궁금하다.

그때도 실감이 안 나다가 마지막 홀이 가까워지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다양한 감정들이 오고 갔다. 마지막 퍼팅을 하고 그린을 나가니 선수들이 인사를 하러 나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카리 웹이 안아주면서 고생했다고 하는데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골프를 사랑했었고 인생의 전부였는데 이제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감정 때문에 눈물이 났다. 나에게 골프가 너무 큰 의미였고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모든 감정들이 묻어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박세리 선수가 LPGA투어에서 활약하면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의 골프 환경이 세계적인 수준을 갖췄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한국 선수들이 훈련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외국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성장하는 선수들이다. 한국 선수들이 멘탈이 강한 편이라 세계무대에서도 부담감을 이겨내고 잘하고 있는 것 같다. KLPGA투어 선수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지면서 자기 관리, 훈련 등을 잘하고 있고, 투어의 세계 랭킹 포인트가 높아져 선수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됐다.

 

얼마 전에 골프에 개별소비세를 없애자는 방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골프가 어떻게 국민스포츠냐는 의견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골프는 스포츠 종목이지만 한국에서는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시작부터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후를 따져보면 골프를 치지 않아도 골프 선수들 이름을 알고, 골프가 어떤 스포츠인지도 안다. 올림픽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다른 스포츠에 비해 골프가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개별소비세에 대한 의견을 냈던 것은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고, 골프 저변이 넓어지면서 일반 대중들도 골프를 많이 즐기게 됐기 때문이다. 여러 선입견을 서로 노력해서 없애야 하지 않을까 한다.

LPGA투어에는 박세리 선수보다 나이나 경력이 많은 줄리 잉스터, 카리 웹 같은 선수들도 있다. 프로 선수라면 투어에서 롱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은퇴를 하는 아쉬움은 없는가? 많이  아쉽고 섭섭하다. 하지만 운동선수 이후의 삶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수 생활만 오래할 욕심은  없었다. 오래 하면 할수록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내 자리에 대해 생각해봤다. 은퇴 후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내 인생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은퇴 후 골프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운동만 하고 나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명예를 가져도 허무할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은퇴 후 스포츠에 공헌하며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 후배들에게 길을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스포츠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본다. 나도 이제 시작하기 때문에 무엇도 장담할 수 없지만 내 자리를 잘 만들고 싶다.

마지막 대회(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연습하고 티 박스에 오르기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1번홀 티박스에 올라갔는데 많은 팬들이 ‘세리 사랑해’가 써 있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계셨다. 눈물이 날 줄 몰랐는데 눈물이 났다.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많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때부터 (은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팬들도 평소와 달랐다. 시합 중에 평소처럼 플레이 하다가도 울컥울컥 했던 것 같다. 마지막 18번 티에 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티샷을 못할 뻔 했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교차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은퇴식 때는 너무 좋았다. 우승한 것 보다 더 기뻤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마지막 대회에서 팬이 캐디를 맡았다고 들었다. 기분이 어땠는가? 나를 항상 응원해주시는, 오래 전부터 최고의 팬인 분이다. 1년에 한번이지만 이 대회에 경기하러 오면 꼭 오셨다. 그 언니도 골프 치는 내 모습이 익숙할 텐데 이제 그 모습을 못 봐서 섭섭해 했다. 첫 홀부터 같이 울었다. 둘이 ‘우리가 5년만 젊었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 텐데, 미국에도 갔을 텐데’하며 아쉬워했다. 시원섭섭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미국 아칸소에 사는 팬이 있는데 일부러 미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응원해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이제 공식적인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된다. 어제 잠은 잘 잤는가? 잠은 계속 잘 못 잤다. 리우 올림픽 후 은퇴가 가까워져 오면서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어젯밤은 더 특별히 심란했다. 시합을 앞두고 있는 생활이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는지 은퇴가 실감이 나진 않았다. (은퇴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생각이 없었고, 너무 많은 팬들이 와줘서 너무 기쁜데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은퇴식을 하면서 많이 감동 받았다. 운 기억 밖에 없다. ‘어떤 선수가 나처럼 행복한 은퇴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오늘밤, 아니 이번 주 내내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은퇴식에서 본인을 골프에 세계로 입문시킨 아버지와 긴 포옹을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아버지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고계시리라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은퇴를 했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마음이실 거라 생각한다. 좋을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다. 아버지 덕에 이렇게 성장한 것 같다. 어렵게 골프를 시작했지만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 골프 선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심장 같은 분이셨다. 골프를 계속하고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가족 때문이다. 너무나 감사하다.

박세리를 롤모델로 골프를 시작한 ‘세리키즈’들이 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를 보는 심경은 어떠한가? 너무 든든하다. 만약 지금의 ‘세리키즈’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골프도 없었을 것 같다. 나로 시작했지만 나로 끝나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앞으로 나를 보고 시작한 선수들이 ‘세리키즈’로 불리지만 또 다른 선수의 키즈가 많이 나와서 오랫동안 한국 골프를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주최 측에서 은퇴식을 앞두고 ‘SERI’, ‘Thank you SERI’라고 쓰여진 모자를 준비했고, 먼저 은퇴한 선수들도 자리를 해주었다. 기분이 어땠나?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은퇴식에서 영상을 보며 많은 감정을 느꼈다. 지난 20년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도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오고 갔다. 나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작한다고 생각한다. 신인때 불안하기도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런 두려움이 있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성원해줘서 감사하다.

은퇴식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특히 박찬호 선수가 만사를 제쳐두고 왔다고 한다. ‘박세리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박세리에게 박찬호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나와 같이 갈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웃음). 박찬호 선수와 내가 미국에 진출한 건 아마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90년대는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쉬운 선택이 아닌데 둘 다 새로운 도전을 했다. 이후 서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구자라는 것은 쉽지 않다. 둘 다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는데 후배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서로 돕는 스포츠인이 되고 싶다.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초대 챔피언이고, 하나금융그룹은 현재 본인의 메인 후원사이기도 하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2002년 하나은행이 처음 LPGA투어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했는데 내가 초대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메인 후원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은퇴 경기를 했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것 같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스폰서십을 하고 있는 등 골프를 위해 많은 후원과 노력을 하고 있다. 단단하고 훌륭한 회사 소속으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감사드린다. 내가 은퇴 후 후배 선수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프로골퍼 박세리가 아닌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박세리로 배워가며 노력하겠다.

지난 21년 동안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해온 골프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 달라. 고생한 만큼 내가 받은 것도 커서 정말 행복하다. 나에게 골프는 인생의 전환점이다. 성공해야겠다는 이유가 있었고, 성공 후 나의 모습이 고맙다. 골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게 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앞으로는 선수가 아닌 자리에서 많이 만날 것 같다. 또 다른 좋은 일로 뵙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또한 대한민국의 스포츠인들에게도 많은 사랑과 관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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