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문학> 골프학적 인생론
<골프와 문학> 골프학적 인생론
  • 남길우
  • 승인 2014.08.05 14: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와 문학

골프학적 인생론

 

지적 쾌락과 정서적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게 문학의 속성이다. 이와 같은 등가물을 주변 스포츠에서 찾아보면 비교적 쉽게 골프로 전이된다. 내가 골프업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골프행태를 보면 비교적 문학적 속성과 많이 닮아 있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문학이 삶의 인과응보를 추적하듯 골프에서도 라운드의 행태는 영락없이 문학적 구성을 닮아 있다. 또 골프의 연원을 찾아보면 문학의 형태와 비슷하고 결국 인생을 말해 주는 것은 동질의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골프를 인생이라고 말한다. 또 골프에 한 번 빠져들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쉽게 말해서 골프는 동네 마당에서 또래들과 모여 놀던 유년기 동심의 확장과 같은 맥락이다. 동네 안마당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놓고 구슬 넣기 놀이를 하다보면 해 지는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해거름이 돼서야 집집마다 엄마들이 나와 저녁 먹으라고 고함을 지를 때까지 구슬놀이에 푹 빠져 있던 유년의 느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때가 낀 손에 먼지가 묻은 옷을 털고 씻어도 여전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잔디가 깔린 광대한 초원에 펼쳐진 골프장에 나가서 기다란 작대기 즉, 디자인과 첨단 기능성이 가미된 값나가는 골프채를 이용해서 공을 치는 것이다. 공을 구멍(홀)에 넣는 골프가 어린 날의 구슬치기의 형태나 감정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사는 맛을 누리고 있다. 그럴 때 인간은 희열을 느낀다. 이성적인 사유만 가득한 세상에 누가 감성의 단물을 퍼부었을까? 누군가 생경하고 거친 대지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그 바람에 지구상엔 미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구멍에 뭔가 넣기를 애쓰는 인간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심지어 천상의 신까지 불러 내려서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됐다. 어느 대회에서든 우승은 기량을 바탕으로 어떤 기운이 있어야 가능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승은 승리의 여신이 점지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는 선물이 됐다.

초기 골프의 발상을 보면 인간의 무료함에서 파생된 일탈의 결과물이다. 골프는 일상의 무료함, 즉 심심풀이를 깨고 나온 창의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광대한 초원은 원고지며 양떼들은 글자며 양몰이 지팡이는 펜이라고 비교해 본다. 그런 차원에서 골프와 문학은 형태상 만난다.

옛날 드넓은 초원이나 산에서 수많은 양떼를 돌보는 목동이 혼자서 매일 하루를 보내기엔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멀리 외딴집에서 나붓거리는 빨래에도 마음을 설렐 정도로 목동이란 외로움과 동의어였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작품에서 보면 먹거리를 갖다 준 아가씨가 떠난 뒤에도 방울소리와 말굽소리가 크게 들리고 아직도 귀전에 남아 있다는 표현이 이해된다.

입에 풀잎을 문 목동은 벌러덩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떠가는 흰 구름에다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거나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온갖 이야기를 만들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은 양떼가 되고 심지어 목동별까지 만들 정도로 외로움과 목동은 같은 말이기도 했다. 얼마나 무료하고 심심했으면 목동은 공상 속으로 들어가서 살게 됐는지. 어느 날 목동은 자신의 신세가 한스럽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해서 들고 있던 양몰이 작대기를 냅다 휘둘렀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돌멩이가 휑하니 날아갔다. 날아간 돌멩이는 우연히 토끼가 뚫어놓은 굴에 쏙 들어가면서 어떤 희열감을 전해준다. 단번에 쳐서 우연히 어떤 특별한 곳으로 쏙 들어갈 때의 손맛, 그 쾌감은 이미 공이 떠나기 전에 맛보는 선험적인 쾌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놀란 토끼가 후다닥 굴을 뛰쳐나와 혼비백산 도망을 가는 모습에 호기심이 더욱 발동했다. 목동은 그 구멍에 돌멩이를 툭툭 쳐서 넣었지만 매번 생각만큼 잘 들어가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 수십 번 시도했지만 제대로 들어간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에 적중한 선례가 있었기에 그런 가능성으로 수없이 공을 쳐 됐다. 어떤 목적을 가질 때는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기마련이었고 도전욕과 성공적인 쾌감을 교대로 맛보기도 했다. 목장에서 양떼를 돌보는 것이 일상이 돼 버린 목동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욕망과 재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은 가까이 혹은 멀리서 돌을 치다가 거리개념을 파악했고 솔방울이나 양떼들의 똥을 둥글게 뭉치고 말려서 공삼아 치며 기량을 숙달시켜갔다. 목동은 무료할 때마다 뭔가를 쳐서 토끼 굴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생겼고 수없는 반복 연습에 기량도 차츰 늘었다. 그 놀이로 지루한 시간을 때우고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나 풀 수 있었다.

허나 구멍 가까이서만 공을 쳐서 넣는다는 것은 다분히 기능적인 반복이라서 금방 싫증이 느껴진다. 삶의 부단한 변화처럼 기승전결에 준하는 클라이맥스 즉 임팩트가 없다는 단조로움이 있었다. 긴장하고 기교적인 것만 능하고 바깥으로 표출하는 역동성이 없다는 것은 내면으로만 억눌린 응어리를 호쾌하게 발산해버리는데 한계가 있고 다이내믹한 인간의 파괴적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스포츠란 아주 섬세한 테크닉의 내면적인 응축과 함께 외부로의 압축된 힘의 분출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균형 감각을 갖게 된다. 신체적인 행동과 빠른 사고를 총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수록 고급 스포츠로 요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 스포츠라야 삶의 세련됨과 지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며 고도의 쾌락성과 재미, 건강, 친교, 도전욕구 등 다양한 인간의 덕성을 골고루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무한한 상상력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적인 현상을 골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료한 인간에겐 골프란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어수룩한 땅에 구멍 하나를 뚫으면서 인간의 삶을 생동케 하고 고양 시켜왔다는 것은 인류사상 대단한 발견이다. 구멍이란 생명의 근원으로 통하는 창구랄까? 자연이란 거친 대지에 구멍을 뚫으면서 대지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된다. 주변은 정리되고 하나의 인간적인 활동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방치된 공간에 의미부여가 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 게 골프다.

그렇다. 인간의 오감이 펼쳐지고, 감정의 조율이 있고, 역동성과 정적인 조화, 갈등과 해소, 정신성과 인체 활동성을 골고루 풀고, 조우고, 열고, 닫는 그 균형 위에서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문학이 서서히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법이다.

클럽을 휘둘러 공을 쳐 날리는 거나 펜을 휘둘러 글을 쓰는 작업에서 모두 나를 통해 우주가 있고, 세상이 있고, 내가 있고, 외연이 있고, 내면이 있다.

인간은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한 법이다. 사유 다음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무리 중에 최고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유만 무성하고 행위가 부족하기에 삶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처럼 행위와 사유를 조합하는 골프의 과정이 곧 문학과 유사하다. 문학이나 골프나 모두 끊임없는 변화 속에 살아간다. 이어지는 플레이나 문학작품은 매번 다르다. 그렇듯이 인생도 살아가는 방식이 매일 똑 같을 수는 없다. 단지 편안히 안주하려고 하는 안일감 때문에 날마다 무료한 일상이 되는 법이다.

몰입과 즐거움과 창의성이 없다면 인간에게 문학이나 골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장 연필을 던지고 클럽을 던져야 한다. 삶의 가치에 식상한 잉여 의식이나 생산하고 감정의 소비만 조장해서는 백해무익이다.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유도하는 게 문학만한 것이 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에 기대며 함께 살고 또 골프의 시스템에 푹 빠져 사는 것이다. 인간의 퇴보나 부조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믿고 기대는 것이다. 인간 삶의 가장 중추적인 엑기스가 추출되기 때문에 문학을 믿고 골프에 기대는 법이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윤택하고 질적 삶을 영위하는데 문학과 골프만한 게 있는가 묻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골프가 삶을 고양시키는 역할에 충실하고 부단한 삶속에 수렴되는 인생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받아들이고 않고는 자신의 선택이다. ‘굿샷!’이 온 코스에 울러 퍼진다.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명작이 ‘굿샷!’을 날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