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 프리한 골프장을 향하여
배리어 프리한 골프장을 향하여
  • 나도혜
  • 승인 2021.09.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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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나 노인 등 신체적 약자들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지어진 경주의 파크골프장이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전혀 갖추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배리어 프리 바로 알기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단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barrier, 즉 장벽에서 free 자유로워지자는 의미다. 이 단어는 보통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주로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여건을 갖춘 장소나 시설, 혹은 그런 장소나 시설을 요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배리어 프리한 시설이란 장애인이나 노인 등 신체적 약자들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강연에서 시각장애인 혹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스크린에 연사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적는 속기 서비스, 뉴스 등의 방송에서 제공하는 수어 통역들 모두 배리어 프리의 일환이다.

 

장벽 제거하기

 

배리어 프리라는 단어는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건축학 분야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 등도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자는 의미로 주택이나 공공시설 등에 문턱을 짓지 말자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처음 시작된 계기는 문턱을 짓지 말자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주로 활용되는 의미는 물리적 장애물 제거의 의미다.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휠체어가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게 계단 옆에 오르막을 함께 설치하는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스포츠와 배리어 프리

 

스포츠는 배리어 프리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야 중 하나다. 여전히 ‘스포츠’라고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비장애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필드를 활보하고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하면서 경기를 하는 모습이다. 패럴림픽(신체적·감각적 장애가 있는 운동선수들이 참가해서 펼치는 올림픽, 올림픽이 끝난 뒤에 개최된다) 등의 경기가 개최되면서 스포츠 대회에서는 장애인 선수들의 여건이 상당히 나아졌지만, 생활 속의 체육시설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최근 지어진 경주의 파크골프장 역시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전혀 갖추지 않아서 빈축을 사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6월 5일 석장동의 서천둔치 일원에서 ‘경주 파크골프장’ 개장식을 하고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2019년 정부의 생활SOC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어서 국비 2억 7천만원을 지원받았고, 총 8억 4천만 원을 투입해서 만들어진 골프장이다. 2만 1,530㎡의 면적에 400m의 코스 길이를 자랑하는 다양한 난이도의 18개 홀이 만들어져 있다.

 

경주 파크골프장 논란

 

하지만 경주 파크골프장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골프장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차량 출입차단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파크골프장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골프장 출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장애인 주차 공간에 주차하지 못한다. 약 30~40m밖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가야만 한다. 장애인 차량 주차구역이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장애인들은 그 주차구역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입구에는 약 15cm 높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경계석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신체장애인은 물론이고 노인과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거나 깁스를 한 사람, 유모차를 모는 사람 모두 타인의 도움 없이 잔디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동식 화장실은 약 1m의 높이 위에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가파른 3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방법뿐이다. 오르막이나 다른 이용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신체장애인들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체육시설의 해결 과제

 

파크골프란 공원을 뜻하는 파크(Park)와 골프(Golf)의 합성어다. 일반 골프장과는 다르게 공원처럼 작은 부지에 골프장을 조성해서 일반 골퍼는 물론이고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게 재편성된 ‘커뮤니케이션 스포츠’다. 그런데 경주 파크골프장은 ‘파크골프’라는 이름을 내세웠으면서도 전혀 그 이름의 의미에 부합하지 못하는 시설을 조성했다.

경주시는 시설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미흡한 행정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또한, 파크골프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장을 확인한 일부 장애인단체들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경주시는 ‘알겠다’는 답변만 하고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시설을 개선하지 않은 것이다.

박귀룡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수차례 시설 개선을 건의했지만, 경주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는 홍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주시는 국가하천 시설이기 때문에 관계기관과 협의가 어렵고 홍수를 대비해서 이동식 화장실을 지어야만 했다며 경계석 등 개선할 수 있는 시설부터 바꾸겠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신체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체육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로 신체장애인들이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그동안 사회가 신체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체육시설만을 건축해온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정한 사회 구성원을 당연하게 배제할 수 있는 시설은 없다. 건설 과정에서 골프장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은 없을지 고민하고,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을 건축할 때 한층 더 성숙하고 진정한 의미의 ‘대중적인’ 골프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GJ

 

 

By 나도혜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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