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한국오픈 챔프 이준석에 준며들 시간
코오롱 한국오픈 챔프 이준석에 준며들 시간
  • 김혜경
  • 승인 2021.08.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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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2021 코오롱 한국오픈 우승과 함께 그의 왼팔에 새겨진 타투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란 문구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스페로 스페라’는 라틴어로 살아있는 한 꿈은 계속된다,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힘들 때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했다는 이 타투의 문구처럼 꿈을 지켜온 그는 KPGA 코리안투어 데뷔 13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 이준석에 스며들어볼까?

 

호주 교포 이준석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기보다는 꾸준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지하며 버텨온 진주 같은 선수다.

2008년 코리안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수석으로 통과하며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낸 것에 비해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호주에서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지낼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던 시절을 뒤로하고 프로 입문과 동시에 찾아온 슬럼프는 오랜 기간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온 골프를 포기할 수 없었고 그의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그리고 드디어 2021 코오롱 한국오픈 왕좌를 차지하며 프로골퍼로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가꿔온 톱프로, 꾸준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셈이다.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첫 우승의 쾌감이 생생하다.

한국오픈이 끝난 지 2주 정도 지났는데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코리안투어 첫 우승의 쾌감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한번 쾌감을 맛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기분을 맛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서 2승, 3승, 4승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말 많은 분이 축하해주셨다.

실감이 안 날 정도였고, 주변에서 많은 분이 응원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대한 노력해서 더 좋은 선수가 돼서, 그동안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믿고 응원해준 가족과 팬들, 긴 시간 동안 도움을 준 업체(핑, 브리지스톤골프, 아디다스골프, 옥타미녹스, 게이머그립, 2언더웨어, ASO스포츠 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식 연습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스코어가 너무 잘 나와서(9언더) 기분이 좋았다. 자신감이 있는 상태에서 한국오픈 대회가 시작됐지만, 골프가 내 맘대로 되는 운동이 아니다 보니 중간에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와이어 투 와이어로 첫 우승을 장식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잘 버티자는 생각을 했고 마지막 라운드 16번홀 보기 이후로 힘든 상황에 들어갔지만 17·18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하면서 우승할 수 있었다. 평소 위기의 순간이 오면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생각보다 담담하게 임했다.     

 

명승부였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대회 마지막까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현장의 열기를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골프팬들과 함께 짜릿한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우정힐스는 나에게 고마운 골프장이다.

한국오픈 개최지인 우정힐스CC에서 3년째 연습 중이다. 한국에서의 첫 홈코스이기도 하고 첫 우승을 기록한 코스이기도 하다. 2017년부터 해외 투어 활동을 접고 코리안투어에 전념하게 되면서 이정윤 우정힐스 대표님의 배려로 이곳에서 훈련할 기회를 얻었다. 평소 연습하는 홈코스에서 우승을 하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우승 후 뒤늦게 갑상선암 극복 스토리가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는 젊은 나이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맘고생을 많이 했다. 경기력 저하에 대한 걱정과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걱정이 많았지만, 오히려 수술하고 난 이후에는 마음의 부담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골프에 임할 수 있었다.

 

암 극복 그리고 우승

 

작년 12월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2018년 겨울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는데 경기력 저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술 여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수술이 많이 늦어졌다. 젊은 나이에 병을 얻었다는 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찝찝함을 안고 시합에 임하니 골프에 대한 조바심과 증오가 생기는 기분이라 수술을 더 늦출 수 없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너무 지체하다 보면 전이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수술을 결정한 요인이 됐다.  

 

코로나가 수술을 앞당긴 면도 있다. 

해마다 시즌이 끝나면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지난 겨울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 머물게 되면서 갑상선암 수술에 대한 결단을 내리게 됐고, 국내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처음 비시즌을 보내면서 눈이 오면 실내에서 연습하고, 날씨가 괜찮을 땐 라운드를 했고, 헬스를 하면서 몸 만들기에 집중했다. 

 

수술 한 달 후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몸 상태가 특별히 나쁘진 않았는데 2021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 보니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하다 체력적인 열세를 많이 느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회복이 돼서 정말 다행이다. 체력은 앞으로도 좀 더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건강과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 줄어들었다.

갑상선암 선고부터 수술에 이르기까지 2년 동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중에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술 후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느긋함이 생겼다. 수술과 우승, 2가지 과제를 해결하면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투어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나이도 있으니 빨리 우승해야 하는데, 몸도 안 좋으니 얼른 성적을 내야 하는데….’ 조바심을 내고 쫓기던 느낌이 줄어들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내가 괜찮은 선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이준석은 만 20살에 프로 선수가 된 후 코리안투어 외에도 아시안투어, 원아시아투어, 호주투어를 두루 섭렵했다. 코리안투어에 매진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퀄리파잉 토너먼트 1위로 코리안투어에 데뷔하며 기대를 모은 것에 비해 우승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슬럼프와 드라이버 입스로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어 위기를 잘 넘기지 못하고 우승 문턱에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던 건 자신의 골프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고 분석한다.

 

꿈에 한발 다가서다

 

주니어 시절을 후회 없이 보냈다.

아마추어 선수 시절의 나는 골프를 정말 사랑하고 즐겼던 1인이다. 과거의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였다는 것을 칭찬해주고 싶다. 만족스러운 주니어 시절을 보낸 셈이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골프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또, 주니어 선수 시절을 거쳐온 선배로서 주니어 골퍼들에게 잘될 때일수록 신중하고 겸손해져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코리안투어 첫해가 가장 힘들었다.

2008년 퀼리파잉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주변의 기대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투어 데뷔 첫해인 2009년에 슬럼프를 겪으면서 몹시 힘들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한 것도 이때이다. 첫 단추를 좀 잘 못 끼웠던 것 같다. 장비나 테크닉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프로가 된 후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했다.

입스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사실 기록으로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드라이버 정확도가 Top 50 이내로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드라이버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으니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두려움을 갖게 됐다.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던 건데, 다행인 건 약점을 찾아서 보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적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쏟았던 열정과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포기하지 못했다. ‘(우승에)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승을 꼭 하고 싶었다. 칼을 뽑았으면 휘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사실 가족들은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줬지만 스스로의 목표가 있어서 계속했다. 

 

26살 때 결혼을 했다.

병환 중에 계시던 아버지의 소원이 손자를 빨리 보는 것이어서 결혼을 더 서두르게 됐다. 아버지는 첫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우승하고 나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살아계셨으면 너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셨을 것 같아서 말이다. 

 

8살짜리 아들과 6살짜리 딸이 있다.

아이들은 우승의 의미보다 각자 원하는 선물을 해주겠다는 아빠의 우승 공약에 더 신나하고 있다. 결혼 후 아무래도 가장이다 보니 혼자일 때보다는 걱정도 더 많아지고 부담감도 갖게 됐었다. 내 꿈을 위해 가족들이 희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있었기 때문에 꼭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었는데, 이번 우승으로 그러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한 꿈은 계속된다 

 

선수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90점 정도 주고 싶다.

나머지 10점은 앞으로 채워가야 할 부분이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부족한 10점을 채우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프로 선수로서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해왔던 것 같다. 

 

하루 평균 8시간 정도는 연습한다.

헬스, 골프 연습, 리커버리 시간 포함해서. 비중은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좀 타고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슬럼프를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력형으로 변한 것 같다.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티샷이 많이 좋아졌다. 과거 약점이 장점으로 긍정적으로 바뀐 셈이다. 아이언샷은 괜찮은 편이고 퍼팅도 많이 좋아졌다. 지금 제일 자신 없는 부분은 숏게임이다. 아직 좀 더 보완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하는 것이 취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고, 스폰서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은 소통의 창이 되고 있다. 이번 우승 후에 인스타를 통해서도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인스타 계정에서 한국오픈 우승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다. 추첨을 통해 10분께 상품을 랜덤으로 보내드렸다. 

 

아직 1승, 부족한 게 많다.

올 시즌 남은 대회 중 가장 우승 욕심이 나는 대회는 제네시스 챔피언십이다. 그 대회 우승을 통해서 미국에서 열리는 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나갈 기회를 얻으면 좋겠다. 또한, CJ컵에도 나가보고 싶다. 기회가 되면 PGA 투어에서도 뛰고 싶지만 아직은 코리안투어에서 좀 더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1승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준석이라는 이름을 한국에서 더 알리고 싶다. GJ

 

 

By 김혜경 사진 김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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