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리골프장 용지와 이승만 정부의 구황실 소유지 임대
군자리골프장 용지와 이승만 정부의 구황실 소유지 임대
  • 강인구
  • 승인 2021.03.02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CC의 탄생과 그 뒤안길 연재 ➌

 

 1953년 9월경 한국에 신설된 골프 연습장내 미군 장교들의 모습(자료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한국 골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서울CC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골프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서울CC가 일제 말기 폐장된 군자리 골프장을 해방 이후에 재건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정부 수립 후 군자리 골프장(서울CC)의 시작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CC의 발자취를 5회에 걸쳐 알아보자.

 

“역사에서 드러나듯이, 사적 소유권과 세습적 지위 때문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과 세습적 지위가 생기는 것이다.” 

-헨리 조지, 『사회문제의 경제학』

 

서울칸트리구락부의 구황실 소유지 임차

 

1954년 군자리코스 7번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서울CC를 창립했던 정관계 고위층들이 일제 강점기 과거와 단절하고 싶었겠지만, 군자리골프장 용지문제와 얽힌 구황실 소유지 임차문제와 농민들의 경작권 저항 등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정부 수립 후 구황실 재산은 먼저 1950년 4월 8일 제정된 <구왕궁재산처분법>에 적용받게 되었다. 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에서 찾아보면, 이 법 제1조에 ‘구왕궁재산은 구한국 황실 또는 의친왕궁의 소유에 속했던 재산으로서 구이왕직에서 관리한 일체의 동산과 부동산을 국유로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또한 구왕궁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의 감독하에 임시구왕궁재산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군자리골프장 용지를 포함한 구황실 부동산과 동산 모두가 이 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국유 재산 목록에 등록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총독부 소속기관 이왕직에서 관리했던 구황실 재산이 미군정기에 매도된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국유화됐다. 6.25전쟁 직전에 군자리골프장이 개장될 때도 그 용지는 <구왕궁재산처분법>에 근거해 국유지 상태였다. 
이승만 정부는 6.25전쟁이 끝나기 전에 급한 대로 특별회계법과 별도로 구황실 재산 관련법을 재차 국회에 제출했다. 1953년 4월 18일 공포된 <구황실재산관리특별회계법>은 구황실 재산을 ‘역사적 고전문화재로서 보존 관리하기 위해 특별회계를 만들어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취지와 또 하나는 구왕족에 대해서 생계 유지에 필요한 정도의 생계비를 지출할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견지에서’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구황실 재산관련 회계가 일반국고에서 분리 독립되었다. 당시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은 국가재정 형편상으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선 구황실 재산이라도 특별회계를 만들어 유지 관리하도록 하는 정부 원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조금 나중에 공포되는 <구황실재산법>은 제5조에 ‘구황실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대통령 감독하에 구황실재산관리위원회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을 둔다’ 했고, 제9조에서는 ‘대통령은 위원회와 사무총국에 대하여 감독상 필요한 사항을 명령하며 그 결의 또는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해서 거의 전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구황실 재산관리를 위해 이미 전 치안국장 윤우경을 사무총국장으로 임명해 놓은 상태였다. 윤우경(본명:윤홍익, 해방후 개명)은 일제 강점기 때 황해도 송화경찰서장을 지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그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감사로 선임된 뒤에 유도회 부위원장까지 하면서 깊이 관여했다는 점이다.
서울칸트리구락부 정관에서도 밝혔듯이 골프를 보급 발전시키기 위해 군자리골프장 재건이 시급했다. 6.25전쟁 이전처럼 기존 골프장 용지내 소작농민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도 없었고, 구황실 재산에 묶여 있는 골프장 용지를 그냥 대여받기도 쉽지 않았다.
서울CC 첫 번째 미션은 구황실 소유지로 묶여있는 군자리골프장 용지의 활용 방도를 찾는 것이었다. 골프코스 용지는 소유권이 국가기관에 있었고 이를 법적으로 임대해야하는 절차가 남아있었다.

 

1956년 한국은행 재건 전경(자료 출처: 국가기록원)

 

지금 확인되는 골프장 용지의 최초 임차방식에 대해서는 신용남의 회고록 『골프 교우 50년:한국골프 요람기의 서울CC』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울CC(군자리골프장:필자) 건설은 정부가 정면으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승만 박사는 이 왕가 소유의 땅을 ‘원 달러 콘트렉트’ 방식(증여는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평당 1원씩 거래)으로 빌려 주고 관이 적극 지원하도록 한 것…”

 

군자리골프장 재건과 이순용 이사장

 

1955년 외자관리청 집무실에서 이순용 이사장의 모습(자료 출처: 국가기록원)

 

『한국골프총람』에서 밝히고 있듯이 당시 군자리골프장 건설 현장을 담당했던 연덕춘 프로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칸트리구락부의 창립을 준비하고 있을 때 몇몇 인사들은 이미 골프장 코스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고 한다. 
1953년 봄 연덕춘 프로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김진형 한국은행 부총재가 만나자고 했다. 대뜸 김진형이 말하길, “이제 나라 체면상 골프장 하나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 하면서 골프장 재건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 때 골프장 건설사무소는 한국은행 별관에 임시로 방 하나를 얻어 차려졌다. 우선 군자리골프장 용지 한구석에 연습장부터 만들었다고 한다.  
서울cc가 창립된 한 달 뒤 12월 중순 구락부의 이사회가 회현동 컨티낸탈 호텔에서 다시 열렸다. <서울CC 설립안>에 보면 골프장 완공시기를 다음해 6월경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이사회에서는 골프장을 공동 사용하는 조건으로 골프장 공사에 미8군의 장비 등 물자를 부담시키고 서울cc는 인력을 부담하도록 미8군과 교섭하기로 했다. 
이순용 이사장은 미8군과 교섭을 즉각 시도해서 정지작업에 필요한 중장비와 잔디씨, 코스용 기자재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군에 지원을 부탁해서 불도저와 기타장비를 지원받았다. 

해방직후 1946년에서 1948년경에 그는 미24군 방첩부대 971 CIC 파견대에 소속해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Wylie, Allen C. 라고 불리기도 했다. 특히 971 CIC 파견대는 당시 미군정에서 운용한 ‘특활비’ 중 가장 큰 액수를 활동 자금으로 쓰고 있었다.(정병준, 『우남 이승만 연구』) 

후일 이순용 이사장은 골프장 재건공사와 녹화사업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해 군장성 백선엽, 정일권, 유재흥 등을 입회금 없이 서울CC 회원으로 가입시켜주었다. 
이순용 이사장의 극성으로 군자리골프장 재건은 신속히 추진됐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1954년 6월에 개최된 이사회에서 이순용 이사장은 “클럽(군자리골프장:필자)의 전기, 전화 및 수도 시설이 시급하다. 수도는 서울시, 전기는 경전, 전화는 체신부, 식목은 내무부 그리고 기타 자제는 교통부로부터 각각 특별 원조를 받아 근간 준공되어 7월 11일에 개장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회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고 한다. 준공일에 군자리골프장은 전장 6,750야드, 파 72의 골프코스로 개장됐다. 
역시 서울CC 창립멤버들의 ‘얼굴마담’ 역할이 그대로 실력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옛말에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거늘.
신용남의 회고에 의하면, 외자관리청장으로 있던 이순용 이사장은 300평의 클럽 하우스를 짓기 위해 외자청 물자를 빼돌렸다고 해서 감찰위원회(현 감사원) 감사를 받고 국회에까지 논란이 되어 한때 징계처분 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법무부에서 무혐의로 처리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더 이상 잡음 없이 처리되었다고 한다. 당시 한 때 ‘외자관리청 부정사건’으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외자관리청 부정사건을 조사 중인 감찰위원회에서는 7~8일에는 조사관의 총동원이라는 근래에 보기 드문 집중조사를 개시했다. 탐문한 바에 의하면 기보한 3천8백여만환의 국고 세입의 손실과는 별도로 동 시멘트 매포 당 341환으로 판매한 것 같이 가장하고 이면에 있어서는 총수 19만8천 포중 15만포에 대해 전기 금액 외에 매포 당 50환씩을 첨부하여 업자에게 매각함으로써 750만환의 부정이득을 착복한 새로운 사실이 탐지되어 방금 맹렬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는데 동 사건에 관련해 외자관리청장 이순용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카운트리 크러브’(서울칸트리구락부:필자)에 대하여도 조사가 병행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향신문』, 1954.7.9.)

 

군자리골프장 용지와 농지경작권 확인 소송

 

6.25전쟁 직전 군자리골프장이 복구될 때 이미 골프장 용지 근처에서 경작하던 농민들에 의해 집단저항이 제기됐었다. 골프장 용지를 놓고 정부와 농민들 사이에 충돌은 해소되지 못한 채 골프장 복구공사가 추진됐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서 관련내용을 확인해보면 농민들은 1949년 시행된 농지개혁법을 근거로 소송을 걸었지만, 서울CC는 농지개혁법 시행 이전에 해당 용지가 골프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들어 농지개혁법에 저촉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농지소유권 분쟁은 법원에 현 지주를 상대로 경작권 확인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고, 승소 판결될 때 그 농지를 자신 명의로 분배받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를 거듭 들여다보면, 6.25전쟁 이후 서울CC가 창립되고 파손된 골프장을 다시 건설한 다음에는 전체 골프장 용지 201,212평에 걸쳐 임대료(밑줄:필자)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총 1억1천만 환(평당 500환)을 농민들에게 보상하는 무마책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참고로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구황실소관 농지총집계표>에는 서울칸트리구락부 골프장 용지로 16필지, 218,125평을 임대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불응하고 정부를 상대해서 <농지경작권 확인소송>으로 대항했고 결국 일부 승소했다. 정부는 골프장 용지에 대한 농민들의 경작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성동구 구의동에 있는 컨트리클럽 골프장을 에워싸고 정부와 연고자 사이에는 ‘농지경작권확인’ 소송이 계쟁 중에 있었는데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연고자에 ‘경작권이 있다’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연고자들이 경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즉 원고 최종우외 243명은 지난 4290년(1957년:필자) 3월 27일 정부를 상대로 농지개혁법 실시 당시 분배받은 25만평에 달하는 농지를 경작할 권리를 부여하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인바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법원 박용원 부장판사는 농지개혁 당시 경작한 사실을 인정하여 경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실제로 농지를 분배하는 문제는 행정사무에 속한다는 이유로 분배실시에 대한 이의신청은 기각하였다. 따라서 경작권만을 확인받은 연고자들이 과연 실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1958.4.26.)

서울CC는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했다고 한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 보면 군자리골프장이 1950년부터 개장되어 골퍼들이 골프코스로 사용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재판에서 서울시 당국자에 의한 ‘원고측(필자:농민측)이 농지로써 1956년까지 경작하고 있었다’는 구두 변론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여 판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서울CC측은 즉각 항소를 결정했다.
군자리골프장 용지 소송건은 서울CC측의 항소로 3년을 더 끈 끝에 가까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역시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1960년 초 농민측이 이전에 서울CC에서 제시했던 평당 500환씩 권리금(밑줄:필자)조로 보상해 준다는 조건에 대해 동의를 제의해 왔다고 한다. 4.19혁명 이후 농민측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사태 해결을 요청해왔고 서울CC측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된 덕택이었다. 
서울CC는 보상에 소요될 골프장 용지 총면적 201,121평에 대한 예산 총액 1억1천만 환을 필요로 했고, 이를 4분기별로 분할 지불키로 농민측과 약정에 도달했다. 마침내 서울CC는 우여곡절 끝에 군자리골프장 용지에 대한 농민들의 경작권을 말소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이승만 정부 말기에 가서야 ‘강권 발동’으로 시작된 군자리골프장 용지 분쟁문제에 대한 현실적 타협책을 찾게 됐다. 서울CC는 농민측에 대한 보상이 완료되면, 구황실재산관리국에서 골프장 용지의 임대차 계약을 1963년까지 최장 기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다시 서울칸트리구락부는 골프장 용지 임대료를 저렴하게 상쇄시키고, 골프장 용지는 무상으로 양도하는 방법이나 일반 경쟁입찰로 불하되는 경우에는 우선권을 부여받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GJ

 

 

By  강인구 사진 서울CC,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