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레이더 여성 경기보조원들의 웃픈 현실 이야기
#GJ레이더 여성 경기보조원들의 웃픈 현실 이야기
  • 김태연
  • 승인 2019.10.18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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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4만여 명의 하우스 캐디들

 

골프저널 명실상부한 골프의 계절이 돌아왔다. 10월은 누가 뭐래도 골프의 달이다. 하지만 골퍼들이 황금의 시즌을 만끽할 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계절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동반자(?)들도 있다. 바로 캐디라 불리는 경기보조원이다.
한국의 골프 인구는 500만명이 넘지만 골프 문화의 발전은 양적 성장세를 따르지 못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에게 행해지는 각종 성추행을 비롯한 다양한 갑질행태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힘 있는 고객일수록 갑질 더해

 

“하여간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일수록 더하다니까요.” 수도권 골프장의 한 캐디 마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보조원 1명과 내장객 4명을 태우도록 고안된 카트에 어쩌다 실습차 수습 경기보조원들을 태울 일이 있으면 고객들은 젊다 못해 어린 캐디를 앉히려 혈안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은근슬쩍 허리나 허벅지를 만지며 20대 초반의 신입들은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한다.
골프장에선 다른 스포츠에 비해 유독 성적인 은유가 자주 동원된다. 스포츠보단 접대의 장으로 먼저 구축된 한국 골프 문화의 영향이다.

 

최악의 내장객

 

A씨는 원래 하던 백화점 일보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갓 스물을 넘겨 캐디 일을 시작했을 때 남성고객들이 쏟아내는 음담패설에 치를 떨곤 했다고 말했다. “이름 좀 보자며 가슴에 단 명찰을 더듬는 일이 하도 많아서 대부분의 중견 캐디들은 명찰을 아예 모자에 달아요” 실제로 요즘엔 모자에 이름표를 다는 것이 일반화 됐다.
B씨는 과거 여당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던 한 전직 장관을 최악의 내장객으로 꼽았다. 제발 그 전직 장관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자신이 일하는 골프장에 오지 않기를 기도한 적도 있단다. 그는 그린에 나서면 먼저 셔츠의 단추를 풀고 목을 내밀었고, “손발 멀쩡한 그의 목에 왜 꼭 내가 손수건을 감아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카우보이모자를 즐겨 쓰던 전직 장관은 매 홀마다 모자를 벗고 머리를 내놨다. 그가 숱 없는 머리를 드러낼 때마다 동반한 경기보조원은 냉수를 채워온 아이스박스에서 손수건을 빨아 그의 머리에 얹어줘야 했다. 18홀 골프장이었다. 약한 비가 오면 비옷도 입지 않은 채 그에게 우산을 받쳐줘야 했고 거센 비가 오면 라운드를 재개할 때까지 클럽하우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그들 일행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모든 공직자가 그렇진 않겠지만 공무원이라면 치가 떨린다고도 했다.

 

골프장이 사람을 만든다

 

“야”라고 불리는 일은 다반사다. 걸핏하면 욕을 내뱉는 내장객도 있다. 내기 골프를 하는데 경기보조원이 실수로 거리를 못 맞추면 욕이 날아온다. 20년 넘게 경기보조원으로 일해온 C씨는 ‘미친 ×들, 썩을 ×들’ 하면서 여자에게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성 경기보조원들을 싸잡아 욕하는 내장객도 많다고 했다.
4~5시간의 라운드 시간 동안 내장객의 추태를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경기보조원의 몫이다. 경기보조원들은 그게 더 갑갑하다. 한두 차례라면 실수로 넘어갈 일이겠지만 한번 희롱을 시작한 내장객들은 대개 골프장 쪽의 적절한 제재가 없으면 같은 습성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다.
캐디들 사이엔 ‘골프장이 사람(고객 수준)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일부 회원제 골프장에서는 내장객만 경기보조원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보조원도 고객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손버릇이 좋지 않다, 욕을 잘하는 손님이니 주의하세요” 같은 평가가 누적되면 3개월 동안 회원 자격이 정지되기도 한다.

 

‘캐디는 전문직’이라는 인식 우선돼야

 

대한골프협회의 골프 규칙을 보면 ‘캐디’는 규칙에 따라 플레이어를 원조하는 사람이다. 캐디는 크게 프로 경기를 위한 전문직인 프로 캐디와 골프장에 전속돼 내장객을 보조하는 하우스 캐디로 나뉜다. 전국 450여 개 골프장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하우스 캐디는 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우스 캐디 역시 단순한 짐꾼이나 서비스직만은 아니다. 목표 거리 측정, 장애물 및 그린 상태에 대한 조언 등을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 경기보조원의 노동에는 경험치에 따른 전문성의 영역과 서비스의 영역이 혼재돼 있다.
골프를 ‘스포츠’로 즐기는 이들이 경기보조원을 전문지식을 갖춘 안내자로 대우하는 데 견줘 '접대'나 '과시' 행위로 즐기는 이들이 그날의 짐꾼이나 몸종쯤으로 부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 숨어있다.
일단 라운드를 나서면 내장객의 수준이 어떠하건 경기보조원들은 그날의 캐디피(일당)를 주는 내장객에게 군말 없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골프장에서 캐디들은 그날의 경기가 끝나면 내장객으로부터 직접 캐디피를 받는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지만 마치 ‘팁’처럼 생색을 낸다.
무엇보다 폭력과 멸시의 뿌리는 경기보조원들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있다. 캐디들은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 기사, 퀵서비스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직'이다. 골프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건당 10만~12만원의 캐디피를 받는다.
대부분의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그러하듯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감수하게 될 불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특수고용직의 이중적 지위

 

기본적으로 골프장 측에선 캐디들은 ‘언젠가 그만 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현장의 캐디들은 말한다.
“골프장들이 일회성으로 보는데 내장객들이 경기보조원의 인권을 존중할까요? 골프장의 정규직 여사원들이 내장객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이와 받지 못하는 이의 차이에 대해 고객들도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수에 가해지는 ‘벌당’(벌로 서는 당번)은 업체 관리자의 악덕을 그대로 반영한다.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갑을’ 관계의 역학에 가림막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용한 카트를 충전하지 않거나, 충전한 뒤 전원 플러그를 뽑고 가지 않은 게 한 차례만 적발돼도 벌당을 했다. 벌당 대상자는 5시간 동안 잡초를 뽑거나 ‘디보트’(파인 땅을 반듯이 정리하는 것)를 해야 한다. 월급이 아니라 내장객이 주는 캐디피만으로 생활하는 캐디들은 라운드를 나가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한다. 카트 충전을 잊었다는 이유로 회사가 시키는 노역을 일당 없이 하는 셈이다.
경기보조원들은 2008년부터 산재보험에 임의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프장은 신입 직원을 맞아들일 때 산재보험 ‘가입’ 신청서 대신 ‘제외’ 신청서를 내민다. 역시 ‘노동권’에 어두운 신입 경기보조원들은 요식행위에 가까운 절차를 그냥 넘기기 일쑤다.
노동자로서 보호 받아야 할 땐 개인사업자 취급받지만, 정작 개인사업자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부분에선 어떤 노동자보다 처참하게 부림당하는 것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이중적 지위다. Golf Journal

 

 

Credit

김태연 사진 셔터스톡

magazine@golf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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