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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인터뷰] 김캐런희진의 한국 무대 적응기

미운 오리 백조 되기

등록일 2018년01월13일 07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골프저널=김혜경 기자, 사진=이건영]미국에서 태어나 만 5세에 골프를 시작한 후 줄곧 골프 신동으로 불리었던 소녀, 2010년 만11세의 나이에 미국과 유럽에서 아마추어 100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던 소녀는 2012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한국으로 건너온 후 골프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 사춘기, 언어 문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며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2017년 10월, KLPGA 정회원 선발전을 수석으로 통과하고 프로 무대에 출사표를 던진 김캐런희진 선수를 만났다.

 

 

내 이름은 김캐런희진

 

다국적인 느낌이 나는 이름이다. 아빠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까 한국식 이름을 같이 넣어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김캐런희진으로 지으셨다고 해요. 동생의 이름은 김켈시수진이예요. 
 

골프는 언제 시작하게 되었나? 5살 때부터 PGA Apprentice 프로인 아빠(케이시 김)에게 골프를 배웠어요. 6살 때부터 골프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당시 8살 이하그룹에서 시즌 전체 3위를 했어요. 
 

미국에서 보낸 주니어골퍼 시절의 기록이 궁금하다. 7살 때 언니들을 물리치고 남가주대표로 선발되어 캘러웨이 주니어 월드 골프 챔피언십이라는 세계대회에 출전했고, 8살 때는 최다 최연소 우승을 하며 CKG(California Kids Golf)투어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어요. 9살 때는 8연속 우승, 13타차 우승 등의 기록을 세웠고, 10살 때도 16회 우승, 최연소 TTC 멤버 등의 기록을 이어갔어요. 6살 때(2005년)부터 11살 때(2010년)까지 아마추어 무대에서 100승 이상을 거두고 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에서 주니어골퍼로 활동하며 수많은 기록을 세웠는데, 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나? 2012년 아빠의 사업이 기울면서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한국에서의 주니어골퍼 생활은 어땠나? 가족들이 충남에 정착하게 되면서 천안서여중에서 주니어 선수생활을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5천원이면 라운드를 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린피가 비싸서 실전 연습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연습 라운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시합이 곧 연습이었죠. 
 


 

미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골프 신동으로 매스컴을 장식했고 주목받는 선수였는데, 한국에 와서 존재감이 약해졌다. 한국 생활이 힘들진 않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방황도 많이 했어요. 골프가 전부였는데 중심이 흔들리고, 미국에 있을 때는 내가 최고인 줄 알았다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은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고 또래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이름도 이상하다, 말하는 게 이상하다, 4차원이다’ 이런 평가가 힘겹게 느껴졌어요. 

 

시련을 겪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텼나? 시련을 이기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려고 해왔던 거 같아요. 그리고 노력과 시련이 저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보다 저를 잘 알고 사랑으로 지도해주시는 아빠에게 평소 표현은 못하지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요. 3년 반 동안 저의 가능성을 믿고 장학금을 주신 (주)고려신용정보 윤의국 회장님과 신예철 사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프로골퍼로 비상을 꿈꾸다

 

정회원 테스트를 1위로 통과한 소감이 궁금하다. 한국에 와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주변의 평가에 예민해진 느낌이었는데, KLPGA 정회원 테스트를 1위로 통과하고 나서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했어요. 정규 투어 시드순위전에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시드를 받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드림투어(2부)에 전념하며 1부 투어 대회에는 몇 개 대회는 추천 선수로 나가고, 몇 개 대회는 예선전을 거쳐 도전할 계획입니다.  
 

언제부터 프로골퍼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세워졌나? 초등학교 때부터 LPGA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은 한국에서 KLPGA 드림투어 1승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싶어요. 
 

본인의 골프스타일의 장단점은? 장점은 티샷의 정확성, 주변에서 “넌 어떻게 그렇게 똑바로 치니?”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웃음) 퍼팅도 뛰어난 편이고요. 단점은 감성적인 편이라 정신력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아요.
 


 

국내에서 치른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7년 6월 아마추어 신분으로 예선을 통과해 롯데 칸타타 대회에 출전했을 때요.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대결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시합장에서 아주 오랜만에 황홀하고 흥분된 느낌을 받았어요.
 

동생도 주니어골퍼인 것으로 알고 있다. 네. 동생도 같이 골프를 해서 좋아요. 정말 잘 통하고, 전 동생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연습할 때 꼼짝도 안하고 열중해요. 조그만 아이가 너무 열심히 해서 신기하고 자극도 되고 그래요. 
올 시즌 프로로서 목표는? 2부 투어(드림투어) 3승, 1부 투어 1승이요. 그리고 US여자오픈 한국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 진출권을 꼭 따내고 싶어요.

 

프저널 독자들에게 한 마디 저만의 색깔이 있는 골프를 하고 싶어요. 노력하는 프로가 되겠습니다. 응원 많이 해주세요.

 

 

아버지 케이시 김이 말하는 김캐런희진

 


 

골프를 시작하자마자 딸에게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어릴 때부터 시합에 나가면 입상권 또는 우승이었다.
미국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했었는데, 원래 빈 공터였던 연습장 근처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타구 사고의 위험이 있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미국에서 아마추어시절 100승의 과업을 달성했던 아이였는데 한국에 와서 골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사춘기, 언어 문제,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해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주니어시절 겨루던 친구들이 미국 아마 및 프로 무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딸이 자신감이 떨어진 점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지금도 그 친구들처럼 잘할 수 있는데, 딸이 자신의 잠재력을 잘 모르고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2018년부터 프로 무대에서 뛰게 되는 만큼 딸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고 앞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계획이다.

 

 

magazine@golf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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