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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4> 이종민

챔피언전에서 내 골프 인생을 업그레이드 했다

등록일 2018년06월04일 07시0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골프저널=김주범 기자] 이종민 챔피언은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선 ‘아마추어 골프 황제’라는 닉네임이 붙어 다닌다. 
그는 국내외 클럽챔피언을 27차례나 차지한 ‘챔피언왕’이다.
휘문중 2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해 휘문고, 연세대를 거치면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그는 
1965년 대학 2학년 때 부친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다. 31세 때인 1976년 남서울골프장 클럽챔피언을 시작으로 
2000년 용평골프장 챔피언까지 24년 동안 10개 골프장에서 24개의 국내 클럽챔피언 트로피를 수확했고, 
해외에서 3승을 포함해 27승을 올렸다.

 

 

클럽챔피언 1세대 이종민 (1970년~1989년)
•골프 국가대표 활동
  
챔피언 전적
•남서울CC 1976년, 1977년, 1979년, 1995년
•뉴코리아CC 1978년, 1981년, 1983년, 1984년
•인천국제CC 1983년
•관악CC(리베라) 1984년
•서울CC 1985년, 1995년
• 양지파인GC 1987년, 1988년, 1996년, 1998년
•로얄CC(레이크우드) 1988년, 1990년
•태광CC 1990년, 1991년
•한성CC 1992년, 1995년, 1996년
•용평GC 2000년

 

 


 

골프를 시작하게 된 시기와 동기
나의 아버지께서는 일찍부터 운동을 하라고 권하셨다. 휘문중 2학년 시절 아이스하키를 시작해서 연세대 재학시절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었다. 그러다가 1965년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군자리 코스에서 처음 골프를 접하게 됐다. 당시 큰집이 경기도 이천에 있어 지나는 길에 군자리 코스를 자주 보며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예절을 중요시 하셨는데 골프에서도 마찬가지셨다. 함께 필드에 나가 지인들에게 예를 먼저 갖추게 하며 골프와 인격을 배워가도록 지도해주셨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묻어있는 골프는 나의 인생에서 현재까지 골프채를 놓지 않게 하고 있다.

 

챔피언전에 나가게 된 동기
군 제대하자마자 조금 연습해서 아무 생각 없이 어떤 대회에 출전했다. 챔피언전이란 사실도 잘 모르고 경기니까 신청해서 무작정 나간 것이었다. 그 대회가 1972년 군자리 코스가 지금의 한양 자리로 옮겨가기 전 마지막 챔피언 대회였다. 그때 유명했던 코털 김병훈 씨와 홀 매치로 붙어 연장전까지 가서 이겼고 3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김병훈 씨도 모르던 하룻강아지였다.
그 경기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1976년 남서울CC 챔피언전에 나가 생애 첫 챔피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쉬엄쉬엄 출전하고 했던 것인데 2000년까지 약 24년간 10개 골프장에서 24번의 국내 챔피언을 하게 됐고 국내 최다승이라는 챔피언 기록을 갖게 됐다. 해외 3승까지 합치면 27승이 된다. 이 기록들을 종횡으로 살펴보면 여러 가지 기록이 많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젊은 시절 골프를 좋아했고 그 결과물일 뿐이다. 요즘 젊은 챔피언이 20승을 기록하며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록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기록을 가진 챔피언이 나오길 바란다.

 

골프에서 챔피언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시절 골프가 그저 재미있었고 도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출전은 꼭 챔피언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다. 하다보니까 어느 날 최다승을 달리고 있었을 뿐이라는 말이 맞다.
만약 처음부터 기록을 목표로 했다면, 친구의 말대로 50번은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아서 했던 골프이고 어차피 승부를 가르는 부분도 있고 해서 챔피언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눈치를 많이 받기도 한 것 같다. 대놓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 때문에 기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다 나갔으면 엄청 많은 승수를 올렸을 것이다. 
챔피언이 되려고 선의의 대결을 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나라는 너무 이기려고만 한다. 경쟁 심리를 조장하고 매너와 룰을 어기며 스코어를 조작하는 등 이기기 위해 너무 기량만 앞세우는 골프를 하는 경향이 있다.
챔피언이 됐다면 잘 못 치는 사람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그들을 배려하는 입장이 돼야 한다. 주변을 고려않고 경기해서 이기기만 하려는 자세를 갖고 골프하는 것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클럽챔피언이란 타의 모범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챔피언을 하고 난 뒤의 변화
챔피언전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골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경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이때 골프상식과 기량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또한 사회생활 규율과도 연계돼 도움이 됐다. 
이런 과정을 다 이겨내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서면 골프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생긴다. 특히나 인격적인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마음자세를 갖게 되고 룰과 매너를 더 정확히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골프에서는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

 

골프 스승이 있다면
초창기 같은 연배인 서울CC 박정웅 프로에게 많이 배웠다. 당시 군자리 코스에서는 같은 동년배들이라 한장상, 이일안, 손흥수 프로 등과도 많이 겨루면서 배운 셈이다. 

 

기초 훈련이 있다면 무엇이고 훈련량은
평상시처럼 연습 했고 다른 운동은 스스로 판단해서 골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피했다. 기상과 취침시간도 평소대로 하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지금 와서 보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수영이나 볼링, 테니스 등은 당시 골프에 해롭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피했고 대신 하체근력운동을 주로 한 것 같다. 요즘은 헬스클럽에 가면 골프에 도움 되는 기구도 많아 운동을 자주 하고 있다. 

 

누구랑 골프를 할 때 가장 행복한가
가까운 친구들과 할 때 행복하고 나이 먹으면서 집사람(장옥진)과 라운드를 즐기고 있다. 가족들의 골프 이해도는 긍정적이다. 사실 골프에 너무 시간을 많이 뺏겨서 애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아내도 잘 맞는 날엔 핸디캡 15 정도이고 아이들 3형제 모두가 골프를 하지만 셋째가 잘 친다.

 


 

골프 인생에서 누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겠는가
골프하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다. 이것은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하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한국의 현대사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을 만큼 얼룩져 있지만 그러한 여건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봐야 긍정적으로 풀린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버지 권유에 의해 골프를 시작했지만 처음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성취감을 가졌던 나에게 당시 스무 살의 나이로 룰과 매너에 묶여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골프는 그리 흥미롭지 못했다. 친구들 역시 별로 호응이 없었고 관심 있는 친구들이 없잖아 있었지만 학생 신분으로 경제적인 면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쉽게들 달려들지 못했다. 
초창기엔 나를 인정해 주시고 워낙 예뻐해 주시는 아버지가 좋아서 따라다녔을 뿐이다. 이때 내가 안 것도 가족 간의 융화였다.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주위 친구들 역시 요즘말로 터프한 친구들이 많았다. 어린 나의 철없던 행동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곤 하셨는데 묵묵히 지켜봐 주신 아버지께 새삼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의 혈기를 잠재워주고 나의 인생길을 윤택하게 해준 골프, 내 인생의 동반자를 아버지는 일찍이 내게 보내 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골프경기가 있다면
자신이 깨든 타인이 깨든 전적은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깬다는 것은 그만큼 값있는 노력이고 열매다. 흔히 골프를 하다보면 코스 레코드나 베스트 스코어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 능력의 평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처음 머리를 올리고 경기에 나가고 하면서 3번 코스 레코드를 경신했다.
남서울 회원친선경기에서 71타, 로얄 클럽대항전에서 69타를 기록했다. 이어 1985년 6월 6일 한양CC 구코스에서 3번째 코스 레코드인 63타를 기록한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 나는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때 그 코스에 나의 젊음이 레코드 되어 담겨있다.
‘63’,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한 성취감이 아마추어 골퍼로 63이라는 스코어에 자부심을 가지곤 했는데 그 숫자는 이제 나이로도 지나갔다. 7년 전 내 인생의 골프 기록을 담은 ‘난 아직도 플레이 중이다’라는 골프 평전을 내면서 골프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에피소드
그간 내가 출전한 경기를 헤아려보면 수 없이 많다. 그때마다 타온 트로피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부지기수다. 소재도 다양하다. 순은으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구리, 청동, 크리스탈…. 종류도 여러 가지다. 웬만한 점포의 트로피 코너 정도 된다.
하나하나 트로피가 쌓여갈 때마다 내 골프의 연륜이 느껴지고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풍요로움을 만끽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트로피가 쌓이고 쌓여 서재에서 일부분은 창고까지 옮겨놔야 할 정도가 됐다.
가끔 추억을 더듬듯 서재에 가서 트로피를 보며 지나간 세월을 유추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미국 출장을 다녀왔을 때다. 내 서재 공간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 이상해서 집사람에게 물었더니 트로피가 너무 많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녹여서 은수저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실용적으로 식생활에 쓰는 게 더 효용적 가치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집사람의 변론이다.
물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내가 원망스러웠고 섭섭했다. 허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내 스스로가 다독일 수밖에…. 하긴 섭섭함으로 치면 집사람이 더 할 말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챔피언 경기방식은 어떤 식이 좋은가
매치 플레이, 스트로크 플레이 다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마추어 경기에서 챔피언전이 아니면 홀매치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홀 매치의 여러 가지 문제점도 있어 없애자고 하지만 각 경기방식마다 게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챔피언전 외의 경기
국가대표 골프선수로 활동했다. 1979년 제4회 오란씨오픈골프선수권대회 베스트 아마, 1980년 제1회 수원오픈골프선수권대회 베스트 아마, 1981년 제3회 부산오픈골프선수권대회 베스트 아마, 1982년 클럽대항골프팀경기 개인 우승, 1982년 제25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아마추어 부문 준우승 등이 있는데 다 젊어서 한 일들이고 골프가 좋아서 한 일들이다.

 

골프 팁
각자 체형과 성격 스윙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적용하는 게 다르다. 그리고 하나 잘 쳤다고 기고만장하다가는 다음 홀엔 잘 쳐야 파고 보기를 내고 만다. 그것이 골프의 가르침이라고 본다. 골프가 사는 데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스윙면에서 요즘 스윙 궤도는 하체와 힙은 어드레스 자세를 잡고 상체만 이용해서 스윙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더욱 멀리 나갈 수 있다. 

 

 

*인터뷰 시점까지는 이종민 챔피언이 통산 24승으로 최다승 클럽챔피언이었으나, 현재는 정 환 챔피언이 최다승 클럽챔피언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골프저널 단행본 '챔피언 그들은 누구인가?'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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